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94세인 체코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Milan Kundra, 1929.4.1 ~ )’는 포스트모던니즘 계열의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품의 하나가 바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라는 장편소설이다. 1984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미국 뉴스 주간지인 <타임>에 의해 1980년대의 ‘소설 베스트 10’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대단한 소설의 제목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무슨 뜻인가? 이 소설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가벼움’과 ‘무거움“이다. 가벼움은 뭔가 긍정적이고, 밝고, 경쾌하고, 유쾌하고, 용기 있고, 자유로운 이미지이다. 반대로 무거움은 뭔가 부정적이고, 어둡고, 묵직하고, 불쾌하고, 신중하고, 속박된 이미지이다. 이처럼 가벼움과 무거움은 대립적이고, 모순적이다. 이 소설이 말하는 ’존재’란 인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밀란 쿤데라‘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긍정적인 이미지인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고 하였는가? 오히려 소설의 제목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벼움과 무거움은 대립적이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밤과 낮, 여자와 남자, 선과 악, 삶과 죽음, 똥과 금, 여당과 야당 등등 대립적이지만 손바닥의 양면과 같이 연결되어 있다. 똥과 금을 예로 들어보자. 똥은 값어치가 거의 없고, 누구나 싫어하는 경향이다. 금은 값어치가 높고, 누구나 좋아하기 마련이다. 똥과 금이 대립적이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똥과 금을 섞으라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똥은 똥대로 거름으로 활용하고, 금은 가치 있는 보석임으로 장신구 등으로 잘 활용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똥과 금 모두는 변화하는 것이니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금을 거름으로 활용하고, 똥을 장신구로 활용한다면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석가모니(B.C.563~B.C. 483) 부처께서 말씀하신 중도(中道)의 가르침이다. 인간과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벼움과 무거움도 마찬가지이다. 가벼움에 집착할 것도 없고, 무거움에 집착할 것도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때로는 가벼워야 하고, 때로는 무거워야 한다. 가벼워야 할 때 무겁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되는 것이고, 무거워야 할 때 가볍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 권력을 잡은 정치지도자와 검·경의 모습을 보면서 이를 불공정하다고 느끼고, 원망하는 국민이 많은 듯하다. 공자(B.C.551~B.C.479)께서는 "躬自厚, 而薄責於人, 則遠怨矣.("궁자후, 이박책어인, 즉원원의) 즉, 자기 자신을 엄격하게 꾸짖고 남을 꾸짖는 것을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이 멀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정치지도자는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 자신이 속한 정당에 대해 비판하고 검증할 때는 매우 무겁고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과 상대방의 가족, 상대방이 속한 정당에 대해 비판하고 검증할 때는 가볍고 관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자기를 반대하는 상대방의 원망이 멀어진다고 설파하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권력을 잡은 정치지도자 특히 수준이 몹시 떨어지는 지도자는 석가모니와 공자가 말씀하신 내용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과 자기 가족, 자신 편의 정당에 대한 비판과 검증에는 한없이 가볍고, 관용적이다. 이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해당한다. 반대로 상대방, 상대방의 가족, 상대방 정당에 대한 비판과 검증에는 가차 없이 무겁고 불관용 적이다. 이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에 해당한다. |